넷플릭스에 접속할 때마다, 내가 '보고 싶어요' 해둔 위쳐 드라마 시리즈가 뜬다. 이 시리즈가 방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계속 기다려 왔는데, 막상 아직도 드라마를 못 보고 있다. 게임에서 마주한 게롤트의 세계에 너무 이입한 때문일까.
4년 전에 클리어한 인생게임, <더 위쳐3: 와일드 헌트>를 되짚어보며 위쳐 드라마 시리즈를 보기 위한 마음을 먹어보려 한다.
위쳐 3(The Witcher 3: Wild Hunt)는 본 게임은 GOTY 1위, DLC 단독으로도 GOTY상을 수상한 수작 중의 수작이다.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장대한 스토리라인과 우수한 그래픽, 세상 곳곳에 퍼져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오픈월드 게임 특유의 자유도. 위쳐 3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다.
세상을 짊어진 자의 카르마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위쳐 3에서 가장 호평을 받는 부분은 '게롤트의 영향력'일 것이다.
게롤트의 사소한 선택들은 사람과 마을의 운명, 세계의 정세까지 바꾸어 놓기도 한다. 행동의 결과물은 단순한 설명으로 처리되지 않고 이후에 진행하는 사소한 서브 퀘스트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등장하는 인물의 관계도나 위치, 심지어 정치 색이 바뀌기도 하고 특정 장소에 거주하는 수천 명의 삶과 죽음이 결정지어지며, 어쩌다가 도와준 캐릭터에게서 지속적인 도움과 호의를 받아 수월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플레이어는 선택의 대가를 오롯이 짊어지고 게임 내에서 피부로 느껴야 한다.
위쳐 플레이어라면 아주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을, 아이들의 목숨과 정 든 NPC의 목숨 그리고 한 마을의 운명을 저울질하는 퀘스트인 남작 퀘스트에서는, 분기점에 따른 결과들에 대한 후기를 일일이 찾아보며 며칠을 고민하다가 일주일 만에 게임을 이어갔다. 게임을 끝낸 지금은 뭘 선택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걸 보니 각각의 결과들에 따른 후기들에 너무 이입을 했는가 보다. (일단 남작은 죽었음)
네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라. 위쳐3가 내내 말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는 거다.
전지자로서의 선택
내가 좋아하는 네이버 웹툰 <쿠베라>는 인도 신화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웹툰이다. 주인공 쿠베라 리즈가 원치 않는 업을 떠안고 자신의 소중한 존재가 살아가고 있는 우주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 아난타이다. 아난타는 시간을 관장하는 초월적 존재이다. 시간을 돌릴 수 있지만 그가 시간을 되돌림으로써 그가 원래 있었던 우주는 가능성의 우주로 바뀌어 붕괴하게 된다. 0차원에는 사람들의 죄업이 적힌 긴 두루마리 형태의 기록이 있는데, 아난타의 기록에는 죄업이 너무나도 많이 쌓여 기록이 새까맣게 변해 있다. 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주 어딘가에서 벌어진 불행한 일을 내버려두는 것은 그가 '그것을 막을 능력이 있었음에도 행한' 죄업이 되어 돌아오고, 그것을 막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면 그로 인해 희생되는 또다른 존재들 때문에 '그것을 행함으로써' 죄업이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이건 내 추측인데, 가능성의 우주로 화해 사라진 우주의 생명체들로부터 쌓인 업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게롤트가 된다는 것은 아난타가 된다는 것과 비슷하다. 게임 속 세계의 입장에서 나는 공략을 통해 미래를 알고 있는 초월자에 해당한다. 어떻게 될지 알고 있으면서도 선택을 해야 하고,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존재. 최선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미래를 시도해보고, 여차하면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존재.
미국드라마 <굿 플레이스>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데, 선악 포인트를 쌓아 천국과 지옥에 가는 시스템을 다룬다. 시즌3 10화에서는 미국에 사는 한 남자가 할머니에게 장미 꽃다발을 선물하고 선악 포인트를 4점 감점당한다. 300년 전에 똑같이 장미 꽃다발을 할머니에게 선물했던 영국에 살던 남자는 145점을 얻었는데 말이다. 그가 4점을 잃은 이유는 그가 노동력을 착취하는 공장에서 만든 휴대폰으로 장미를 주문했으며, 이 장미가 독성 살충제로 길러져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에게 재배된 후 수천 마일 떨어진 곳까지 배달되면서 막대한 탄소 발자국을 생산했고, 또 장미 판매 수익이 여성 직원에게 성기 사진을 보내는 인종차별주의 억만장자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쿠베라>의 아난타는 알았음에도 행해서/행하지 않아서 죄업을 쌓았고, <굿 플레이스>의 남자는 알든 모르든 죄업을 쌓았다. 게롤트도 비슷하다. 공략을 보는 유저도 안 보는 유저도 있겠지만 어쨌든 게임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세상의 크고작은 것들이 바뀐다는 것을 유저는 학습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곁을 떠나는 나의 친구들
모든 스토리 게임의 한계점이겠지만, 위쳐3가 끝나면 게롤트와 상호작용했던 스토리 속 등장인물들은 정해진 위치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행동을 하게 되며, 게롤트와 대화도 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히로인 선택지로 등장하는 예니퍼와 트리스는 스토리 중에서 선택을 잘못했거나 둘 중 한 명을 선택했을 경우 영영 만나볼 수 없다. 동고동락하며 생사의 고비를 넘겼던 친구들이 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이다. 현실 세계로 보자면 죽음과 다름없다.
게롤트의 고향인 케어 모헨은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늑대 교단에게 버려지고 폐허가 되어 버린다. 찾아가도 아무도 만날 수 없으며, 게롤트와 그의 양딸 시리의 정신적 지주였던 베스미어가 죽은 후 케어 모헨은 베스미어와의 아픈 추억이 남아 있는 공간이 된다.
물론 동료 모드를 적용해 나를 따라다니게 할 수 있고, 늑대 교단 위쳐들을 케어 모헨에 기거하게 할 수 있다. 다만 제대로 된 대화는 할 수 없다는 것이 흠. AI기술이 발전했으니 향후 출시될 스토리 게임들에서는 등장인물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 역시 기대해볼 수 있겠으나 출시된 지 8년이나 된 위쳐3가 그런 업데이트를 적용할 것 같지는 않다.
등장인물들과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은 단지 정들었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슬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토리와 사이드 퀘스트를 끝마친 게롤트가 제대로 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인물들은 필드 퀘스트에서 만나는 사람들뿐인데, 필드 퀘스트는 의뢰만 한 번 들어주면 더 이상의 상호작용을 기대할 수 없다.
나에게서 독립하는 게롤트
사용자를 몰입하게 하는 게임일수록 사용자를 더 큰 후유증에 시달리게 한다. 블러드 앤 와인 DLC의 끝에서 나와 눈을 마주치며 웃는 게롤트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게임 속에서 나 그 자체였던 게롤트였지만, 게임의 마지막 순간에 나에게서 떨어져 나와 게임 속에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연출. 게임은 게임일 뿐, 자신을 놓아주고 현실 세계로 돌아가라고.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고 앞으로도 잃을 예정이지만 게임 속에서 그럭저럭 잘 살아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