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초중반은 전세계가 미국발 대공황으로 시름시름 앓던 시기였다. 1929년까지 세계 경제를 선도했던 미국의 실업률이 20%를 웃돌기 시작했다. 1932년부터 1933년에는 인당 GDP가 500달러를 넘지 못했다.
이렇게 암울했던 시기, 리폼은 단순히 절약의 한 방법이 아닌 생존 수단이었다. 미국인들은 뭐든 재활용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실용적이었던 것은 '포대자루'였다. 미국인들의 주식은 빵이었으므로 밀가루 포대는 정기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가축을 먹이는 데 필요한 사료나 밭에 뿌릴 비료 역시 포대에 담겨 있었다. 이 포대자루 천은 사료를 운반할 때 쓰이고도 멀쩡했으니, 품질이 검증된(Tested) 튼튼한 옷감인 셈이었다.
이 천을 깨끗이 빨아서 잘 손질하고는 이것으로 커튼도 만들고, 쿠션 커버도 만들고, 수건, 앞치마, 셔츠, 드레스, 기저귀까지 만들었다. 이때 만든 옷들은 Feed Sack Clothes라 불린다. 사료포대 옷이라는 뜻이다. 몸집이 작은 어린 아이들에겐 포대자루에 머리와 팔다리가 나오는 구멍만 뚫어서 그대로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포대의 디자인이란 것이 참 구렸다. 애초에 옷을 위해 만들어진 디자인이 아니었기에 흉물스러운 게 당연했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디자인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겠지만.
그러자 포대 회사들은 기발한 꾀를 냈다. 포대자루 천을 재활용하기 좋도록 처음부터 포대자루를 예쁘게 디자인한 것이다. 과일, 기하학적인 문양, 나비, 꽃, 풀 등의 무늬가 자잘히 그려진 포대자루는 미국의 주부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인형과 같은 장난감이 그려진 디자인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캔자스 위트(Kansas Wheat)라는 밀가루 업체가 이런 디자인을 시작했다는 말이 퍼져 있는데, 근거가 분명치 않다. 그보다는, 당대의 많은 사료, 비료, 밀가루, 그리고 포대자루 회사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자 이런 마케팅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패턴 디자인 말고도...
이 포대자루들은 직물 디자인뿐만 아니라 바느질 역시 신경써서 고안되었다. 자루를 쉽게 재사용할 수 있도록 간단한 바느질법으로 한쪽으로만 꿰맸다. 따라서 자루 상단을 자르고 실을 잡아당기면 단번에 쭉 뽑혀서 직사각형의 천 한 장이 되었다. 실을 끊지 않고 온전하게 잡아뺄 수 있었기에 실 역시도 재활용이 가능했다. 그야말로 유저경험 디자인의 정수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제품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글씨였다. 글자가 씌어진 부분을 잘라내는 것은 천 낭비였다. 그렇다고 주부들의 바느질을 위해 글자를 안 쓸 수도 없었다.
물론, 이 문제점도 곧 해결된다. 이 글자들은 운반 중에는 지워지지 않지만 가정에서 쉽게 지울 수 있는 특수 잉크로 인쇄되었다. 이 잉크를 지우는 방법 역시 이 잉크로 인쇄됐다. 따뜻한 비눗물에 포대자루 천을 넣고 하룻밤 둔 뒤 문질러 빨면 글자가 깨끗이 사라졌다. 그러면 정말로 패턴이 그려진 튼튼한 천만 남는 것이다.
아이디어, 그리고 마케팅
포대자루 회사들은 자신의 이런 피나는 노력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했다. '베미스 브라더스 포대자루 회사'에서 배포한 홍보물을 보자.
홍보물의 제목은 <고급스러운 면 의류를 만드는 방법: 일석이조! (How To Make Precious Cotton Cloth: Do Double Work!)>이다.
패턴은 심지어 미국을 선도하는 예술가가 디자인했다고 적혀 있다. 사료를 사는데 디자인이 그렇게나 중요해진 것이다. 이런 대화도 상상해볼 수 있다.
가정주부A: 세상에, 그 옷 패턴이 정말 멋지군요. 어떤 사료로 만든 건가요?
가정주부B: 베미스 사료포대요. 캔자스 위트도 베미스 포대를 쓰기 시작했더군요.
가정주부A: 정보 고마워요. 우리 집도 다음부터 베미스로 포장하는 사료를 사야겠어요.
이 홍보물은 '미국 전역의 가정주부들이 베미스 포대자루를 활용해 옷을 만드는 것'을 '봄꽃처럼 경쾌하고, 내일처럼 모던하고, 경찰처럼 실용적'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문구를 대동한 마케팅은 실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힘을 내어 위기를 이겨내자는 미국 내부의 분위기에도 잘 맞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런 패턴 포대자루를 고안한 회사들이 특별하게 창의적이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포대자루를 재활용하던 가정주부라면 '이 자루가 예쁜 패턴으로 만들어졌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 번쯤 했을 테니까 말이다.
포대자루 패션은 당대 미국의 궁핍했던 상황 속에서 이를 이겨내려 했던 가정주부들의 눈물겨운 노하우의 상징이자, 새로운 방법으로 이에 반응했던 포대 회사들의 성실성의 상징이다. 구글 앱 리뷰나 네이버쇼핑 리뷰도 없던 시절, 어떻게 유저경험을 수집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시대상을 생각해봤을 때, 여성의 말을 귀담아듣는 포대자루 회사 직원을 남편으로 둔 한 가정주부가 업계를 넘어 미국 전역에 불러온 엄청난 파장이지 않았을까, 하는 재미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