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내가 2019년 ㄱㅇㅎㅋㅅ 비법노트게시판에 썼던 글을 옮겨서 살짝 수정한 글이다.
나도 안다. 88점은 그렇게 높은 점수가 아니다.
하지만 스피킹과 라이팅 점수를 단기간에 절대 올릴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토종 한국인으로서 난생 첫 토플을 한 달 공부해서 리딩 26, 리스닝 24을 맞은 것에 굉장히 만족했다.
그래서 토플 완전 초심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내가 한 달 동안 택했던 '느낌' 위주의 공부법에 대해서 적어본다.
내 실력..
일단 내 원래 실력은...
수능 영어 (상대평가) 2등급, 대학 입학 이후로 4년간 영어 공부 일절 하지 않았다.
대신 국어를 잘했고 책을 많이 읽어서 언어 자체에 대한 감이 좀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학원이나 인강, 사설문제집 없이 EBS 연계문제집만으로 모평, 학평, 수능 전부 한 번 빼고 1등급을 받았다. - 이과 기준.
한 번 2등급을 맞은 것은 10월 학평이었는데 밤샌 날이라 20분 정도 졸았었다.
나를 아꼈던 국어 선생님이 나한테 수능 직전 학평인데 괜찮냐고 걱정을 했지만
나는 내가 졸아서 그랬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안심시켜 드리고 수능때 98점 1등급을 맞아왔다. ㅋㅋ)
국어 실력을 왜 적었냐 할 수도 있는데,
사실 노베이스에 싹 다 템플릿 '암기' 만으로 시험칠 거 아니라면
진짜 국어 실력, 더 정확히는 '독서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어에서 한 문장의 길이는 한국어에서 한 문장의 길이보다 훨씬 더 길다.
그래서 한 문장 읽다가 다 까먹는다.
그러면 또 앞으로 가서 다시 읽고 다시 읽고.. 그러다가 시간 조절 실패해서 멘붕이 오고 다음 문제들을 날려 먹고...
평소에 어떤 언어든 다독을 하게 되면, 문장을 읽어나가면서 한 문장 당 '이해'를 '보류'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져서 외국어 습득에 큰 도움이 된다.
긴 토플 문장을 읽을 때 한 단어, 한 구절이라도 이해가 안 되면 머릿속에서 쌓아나가던 정보가 와르르 무너지는 사람들은,
영어보다는 국어 먼저 공부해야 한다.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문장 자체가 모르는 단어로 이뤄진 게 아니라면 대부분 언어적인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거니까.
아래 내용은 국어 실력 베이스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적은 벼락치기 공부법이다.
1. 단어와 리딩
나는 초록책 같은 시판 단어장 안 외웠다. (아직도 안 외움... ㅋㅋㅋㅋ)
단어장이 초록책이랑 능률보카 어원편이 있었는데 예문이랑 같이 외워도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고,
외운 단어가 지문에 바로 나오지도 않아 며칠 지나면 다 증발해버렸다.
그래서 조금 외우다가 관두고 다른 방법을 썼다.
일단 리딩을 매일 푼다. 양이 꼭 많을 필요 없다. 나는 정규책(해커스 파랑이책)으로 공부했다.
그러면서 모르는 단어를 표시한다. 뜻을 쓰는 게 아니라, 그냥 표시를 하는 것.
처음엔 정말 절망했다. 지문을 읽으면, 한 문장에 모르는 단어가 다섯 개씩 나왔다.
한 지문에 모르는 단어가 막 30개..
그냥 따로 돈 벌어서 여행이나 가고 토플은 때려칠까 생각도 잠깐 했다.
하지만 좌절할 필요 없다. 그냥 붙들고 푼다.
근데 오답을 꼭 한다.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나만의 단어장을 만드는 것이다.
나만의 단어장을 만들어서, 모르는 단어를 내리 다 적는다.
- 지문별로 적는다.
- 순서를 지켜 적는다.
- 봤던 단어고 아는 단어인데 해석이 안 돼도 적는다.
- 사전에 나오는 뜻을 될 수 있는 한 '전부' 적는다.
영어는 한국어처럼 단어 하나에 적확한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뉘앙스로 이해하기 때문에,
이 문맥에서 내가 아는 뜻으로 해석하면 좀 이상하다 싶은 건 전부 사전에 검색해보고 적어야 한다.
* 절대 지문 위에다가 단어 뜻을 적지 않는다.
토플에는 다양한 분야의 지문이 나온다.
Biology 지문, American History 지문 등 다양한 지문들이 있는데,
그냥 순서대로 모르는 단어들을 적게 되면 내가 단어장을 봤을 때 대충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아하, 이 내용의 지문이었지'하고 느낌이 온다.
단어장만 봐도 그 내용이 생각난다는 거다.
그리고 그 단어장을 외운다. 미친 듯이 외울 필요 없고, 단어를 봤을 때 대충의 뉘앙스가 느낌으로 다가올 정도면 충분하다.
(한국사람들이 단어장 외워봤자 도움 안된다고 말하면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적혀있는 딱 그대로만, 문자 그대로만 외워 버리니까 융통성이 떨어진다.
강박 때문에 딱히 외워지지도 않는다는 게 제일 큰 문제.)
다음날이 되면 전날 풀었던 지문을 다시 읽는다.
3일차에는 1일차, 2일차 지문 전부 다 읽는다.
내가 만든 단어장도 다시 후루룩 본다.
문제를 다시 푸는 것도 아니라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외웠던 단어들이 새록새록 생각나면서 문맥에 맞게 기억이 될 것이다.
이거 일주일만 해도 데이터가 쌓여서 감이 생긴다. 이렇게 하면, 세 가지 효과가 있다.
첫째, 영단어의 뉘앙스 즉 느낌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어느 날은 riverbed(강바닥)라는 단어를 외웠고 어느 날은 seabed(해저)라는 단어를 외웠다고 치자.
내가 아는 bed는 침대이지만, 이 두 단어를 머릿속에 넣고 나면 'bed'가 어떤 것의 바닥이나 아래쪽을 대충 가리키는 단어고 그래서 bed도 사람 아래에 있어서 대충 침대겠구나- 싶다.
그냥 단순히 '침대' 두 글자가 머릿속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bed'라는 단어에 대한 느낌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사람 성격처럼 말이다.
이게 영어에 대한 감이다. 국어를 공부하는 것과 똑같이.
또다른 예로, 'invest'를 '투자하다'라고 알고 있었는데, '포위하다', '둘러싸다'라는 뜻을 새로 알게 되었고 치자.
그러면 두 가지 별개의 invest의 단어 뜻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뭔가 감싸고 둘러싸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투자하다는 '뭔가 item을 돈으로 살짝 감싸서 이케이케 어케 하는 느낌적 느낌..',
포위하다는 '뭔가 막 확 감싸가지고 이케이케 어케 막 뭐 하는 느낌..'이런 식으로 단어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
이렇게 하게 되면 막 '두개골 뒤쪽에 있는' 같은 별 해괴한 단어들도 대강 아 그냥 뭔가 어디 뒤쪽에 있는건갑다, 또는 아 그냥 뭐 신체의 위치인갑다 하고 대애애강.. 감이 온다.
영어에서 prefix와 suffix는 한국어에서 한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그 감을 기르기 위해서는 문맥 속에서 단어를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패키지로 같이 나오는 단어들이 외워지고, 잡지식이 쌓인다.
catalyst(촉매)랑 enzyme(효소)가 자주 같이 나온다고 치면, 지문 읽다가 하나가 기억이 잘 안 나도 대강 요놈이 이런 식의 역할을 하는 놈이었는데.. 하고 느낌이 온다.
나는 사실 이과였는데 물리를 했어서 생물학은 진짜 문외한이었다. 미술사, 미국 역사 이런 건 당연히 까맣게 몰랐고.
근데 지문 자주 읽다 보니 '내용 공부'가 돼서 비슷한 지문이 나오면 자신감이 생기더라.
단어가 기억이 안 나도 문맥파악해서 유추도 되고.
셋째, 단어 따로 리딩 따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서 독해력도 길러지고, 단어가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단어를 외우는 이유는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서인데, 영어와 한국 일대일로 단어를 외워버리면 아예 문장 해석도 안 된다.
문법 다 알고 단어 다 아는데 해석 안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걸 예방해준다.
나는 리딩 지문에서 모르는 단어만 뽑아다가 이런 식으로 단어를 외웠다.
공부 시작할 때만 해도 한 문장에만 모르는 단어 5개씩 있는 노답 상태였는데,
뉘앙스를 이해하니 단어를 '완벽하게 적혀있는 뜻대로' 외우지 않아도 되더라.
시판 단어장 외울 때도 이 방법 병행하면 효과 좋을 것 같다.
특히 능률보카 어원편으로 기초 영단어 하고 넘어가면 초록책도 외우기 쉬워질 것으로 생각이 된다.
하지만, 오해금물. 나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단어'장'을 안 외웠을 뿐 단어장 한 권은 언젠가 꼭 다 외워야 한다.
왜냐하면 먼저, 위의 방법으로 외울 수 없는 단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초 중에 기초인데 이상하게 안 외워지는 주요 동사 및 형용사들일 확률이 높은데, 이 친구들은 그냥 기본 단어장으로 외워야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내가 읽지 않는 분야의 단어들은 단어장 말고는 외울 루트가 없기 때문이다.
2. 리스닝
노트테이킹 하지 마라
내가 문제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 하면 오히려 노트테이킹 하지 말고 듣기만으로 풀어 보아야 한다.
훈련 없이 노트테이킹을 하면 흐름도 다 놓치고 뒷 이야기 아예 이해를 못하게 된다.
리스닝 10점대에게 노트테이킹은 사치다.
근데 시험 때는 노트테이킹이 필요하다.
즉 시험 때 노트테이킹을 하기 위해서 처음에 노트테이킹을 안 해야 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문제를 풀 때, 노트테이킹을 하지 않으면 문제의 80퍼센트는 맞히지만, 사실비교 문제를 틀리게 된다.
이게 바로, 리스닝 초보자가 노트테이킹을 하면 안되는 이유다.
문제에 대한 감이 없으면 노트테이킹 할때 무식하게 다 적는다.
근데 말은 빠르고 손은 느리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을 놓친다.
그러면 문제에 대한 감도 한참 동안 못 잡게 되고(아예 듣지를 못했으니 감을 잡을 수 있을 리 없다)
갑자기 노트테이킹을 안하려니 불안해서 그렇게 못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노트테이킹을 하지 않고 문제를 며칠 풀다 보면
노트테이킹을 했어야 하는데 못한 부분들이 쌓인다.
대신 렉처를 주의깊게 들었기 때문에, 오답노트를 할 때 정확히 어떤 부분을 노트테이킹 못했는지 안다.
그 감이 딱 정립이 되면, 렉처를 들을 때 '아! 지금 교수의 말은 완전 노트테이킹 감이야!!!'하고 느낌이 온다.
그 시점부터 연필과 함께 리스닝을 공부하면 된다.
미드로 감 익히기
이건 사람마다 안 맞을 수도 있다.
특히 심성이 초조한 사람들은 이러면 안 된다. 공부 안 하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 받고 시험 망친다.
리딩으로 주제별 단어를 외우고 있기 때문에 렉쳐 리스닝 단어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고 치고, 나는 하루에 미드 5편씩 봤다.
(물론 리스닝 정규책은 하루에 적어도 4문제씩 풀었다)
한글 자막 한 번, 영자막 한 번, 다시 한글 자막 한 번, 다시 영자막 한 번, 무자막 한 번으로 총 5번 보면 좋다.
대신 귀를 열고 영문장과 한글문장을 비교해가면서 들어야 한다. 이것도 위에 적은 리딩 단어 공부법처럼 느낌 키우는 공부법이다.
영문장 구조의 느낌을 대강 잡게 된다. 듣다가 대체 뭔 문장이냐 싶으면 돌려서 영자막으로 그 부분만 다시 본다.
(VOD 서비스 구독해야 유효한 방법이지만...)
이러면 무식하게 빠르고 굴리는 발음에 대해서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는데, 리스닝 실력이 아예 바닥이다 하면 이거 하지 말고 그냥 리스닝 책 푸는 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