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역병의 시대다. 2020년 관광업계 손실액은 전 세계 1조3000억 달러이며 해외여행 인구는 2018년보다 74% 감소했다. 1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무려 84%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심하다. 2020년 출국 한국인 수가 2019년에 비해 85.1% 감소했고, 한국을 방문한 외래객 역시 2019년에 비해 85.7% 감소했다. 3
언제쯤이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큰 타격을 입은 관광업계는 언제쯤이면 코로나19 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UNTWO에 따르면 전문가의 1%만이 "2021년"이라고 답했고 43%가 "2023년", 41%가 "2024년이나 그 이후"라고 답했다고 한다. 적어도 향후 2년간은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국의 암울한 상황
한국의 관광업은 주로 해외여행으로 굴러간다. 많은 국내여행자들이 스스로 코스를 짜고, 자차로 이동하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투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이 줄어들면서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여행업 피해규모는 총 7조4천억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국가는 여행업계에 융자 지원을 확대했지만 다 합쳐도 7조에는 한참 못 미치는 7500억원 아래다. 여행업은 집합금지나 집합제한 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지원금 지급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심지어 업계 1위인 하나투어조차도 2020년 2분기에 2019년 실적의 5%를 기록했다. 2020년 롯데관광개발은 직원의 3분의 1을 줄이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NHN여행박사는 2020년 8월부터 한 달여간 대부분의 직원이 무급휴직으로 있다가 10월 초 직원 24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2020년 10월 기준 직전 1년간 사라진 여행사는 960곳이 넘는다.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다만 이로 인해 국내여행 시장에 활기가 돌게 됐다. 여행사들은 국내로 시선을 돌렸고, 어느 정도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여행 자체가 축소된 상황에서 한계는 분명했다.
똑똑한 누군가가 결심했다. 사람이 안 되면 다른 걸 여행시켜 보자고.
사람이 안 된다면, 뭐라도 여행시킬 순 없을까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 시장이 침체된 상황. 여행사들은 새로운 여행 상품을 개발하거나 국내여행 시장을 확대하는 등 위기를 타개하고자 노력해왔다. 그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이 인형 여행이다.
인터파크투어는 9월 13일 어제, 최애 인형을 해외로 여행 보내는 색다른 여행상품인 '토이스토리'를 출시했다. 여행지와 날짜를 고르면 인터파크투어가 인형을 수거해 가서 다른 인형들과 함께 여행을 시켜 준 다음 실시간으로 사진을 보내주고, 여행이 끝난 뒤에는 기념품과 함께 인형을 돌려준다고. 기발하다.
여행지와 가격
여행 대상 지역은 방콕, 타이페이, 홍콩, 마카오, 일본 오사카, 북해도, 고베, 교토, 나라. 지역별로 가격이 다른데, 현지 가이드의 인건비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많은 해외여행객 대상 가이드들이 일자리를 잃었을 텐데, 이런 이색 상품으로 조금이나마 일자리가 창출된다니 다행이기도.
지역을 선택할 때 내 인형이 어떤 관광지를 돌아다닐지 미리 확인할 수 있다. 타이페이의 경우 송산 공항, 화산 1914, 시먼딩, 시먼홍러우, 용산사, 보피랴오 거리, 중정기념당, 타이페이101타워를 방문한다고 쓰여 있다. 2일차에 모든 일정이 적혀 있지만 총 여행은 최소 일주일에서 최대 2주 정도 소요된다.
아래는 타이페이를 제외한 여행지의 관광예정지가 정리된 카드뉴스다. (출처: 9월 14일 인터파크TV 라이브커머스)
여행 방식
현지 가이드가 해당 지역의 유명 관광지에서 인형을 등장시켜 찍은 '여행 인증샷'을 오픈카톡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인형 주인에게 보내준다. 오픈카톡방 링크는 여행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고객들에게 개별 안내된다.
한 관광지 당 3장에서 5장 정도의 사진이 제공될 예정이며 현지의 기상 또는 교통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동될 수 있다고.
아쉬운 점은 현지 가이드가 전문 사진기사가 아니어서 아주 예쁜 사진이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점인데, 인건비를 감안하면 합리적인 단점인 것 같다.
여행이 끝나면 간단한 현지 기념품과 함께 인형이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인형 탁송 비용과 기념품 구매 비용 등은 이미 투어 비용에 포함되어 있다.
신청 방법
상품 링크에서 여행지와 날짜를 선택하고 예약을 완료하면 담당자가 안내메시지를 전송해 주는데, 안내에 따라 인형을 포장해 내 놓으면 택배 기사가 픽업해 간단다.
이렇게 인터파크에 도착한 인형은 개봉해서 여행에 적합하도록 재포장되고 이 과정은 영상으로 촬영된다고 하니 소중한 인형이 상할 걱정은 조금 덜 수 있겠다.
인터파크투어는 최대 20㎝ 이하 크기, 최대 500g 미만 무게의 천과 솜으로 된 인형을 권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상품 안내 페이지에서도 고객의 인형을 '솜뭉치'라고 끈질기게 부르고 있다. 깨지거나 부서질 수 있는 소재는 아무래도 EMS 탁송 과정에서 파손 위험이 있으니 괜히 귀한 인형 망치지 말고 시키는 대로 솜뭉치 친구들 보내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듯하다.
또 해당 지역 해당 날짜의 예약건수가 출발 일주일 전까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여행은 취소되고, 출발 5일 전 유선안내를 해준다고 한다.
예전에도 있었던, '여행하는 장난감'
사실 '여행하는 장난감'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다. 원숭이, 선인장, 테디베어 등을 여행지마다 데려가 인증샷을 찍어서 올리는 컨셉 인스타그램 계정들이 그 예시.
특히 아이돌 판에서는 아이돌 굿즈로 출시되는 인형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거나 아이돌의 방문지를 도장깨기하며 인증샷을 찍는 것을 취미로 하는 팬들이 많았다.
어차피 갈 여행이라면 좋아하는 인형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행복하고, 덕질용 SNS에 내 사진을 올릴 수는 없는데, 함께 덕질하는 지인들(ex. 트친)과 여행기를 나누고도 싶으니, 대신 인형을 주인공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반대로 그 글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여행을 한 게 아니어도 좋아하는 아이돌 인형이 지인과 함께 여행을 했다니 이입하기도 쉽고 함께 즐길 수 있다.
특히, 한국 아이돌 스타를 좋아하지만 한국에 올 수 없는 외국인 팬들에게 이런 '랜선 여행' 게시물들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컨텐츠다.
나는 모 기업에서 10대 여성 동향 분석용으로 밀어줬던 어플의 해외 서버를 잠깐 담당했던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인기가 많았던 게시물이 바로 '방탄소년단 관련 장소 여행기'였다. 당시 한 멤버의 생일이 지날 때여서 팬 사이트들이 지하철 한 칸을 꾸며놓았었고, 카페 제휴 컵홀더 증정 이벤트에, 지하철역에 생일 기념 광고까지 게재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방탄소년단이 방문했던 장소나 빅히트 본사 등 방탄소년단과 연관된 장소는 서울에만도 매우 많다. 이걸 서울 여행을 온 해외팬이 도장깨기하며 인증샷을 찍어서 정리한 게시물이었는데 해외 서버 유저 수가 상당히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매우 좋아 메인까지 갔었다.
굳이 아이돌 굿즈 인형이 아니더라도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캐릭터나 추억이 담긴 인형이라면 나 대신 여행을 보내주는 것도 즐거운 기억이 될 수 있을지도?
"대체 왜 저런 걸 해?" 싶다면...
토이스토리 서비스를 보고 대체 이런 걸 왜 하나, 돈 아깝게! 라고 핀잔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가로세로 10px짜리 게임 아이템 가챠하는 데에 수천만원씩 쓰는 게이머들 듣기에도 서럽지 않나. 사람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행복을 느끼는 방법도 다르니 그냥 그런가 보다-해야지 뭐. 그리고 개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냉소적인 사람보다는 인형을 소중히 여기고 인형이라도 여행을 시켜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더 좋더라.
여행을 많이 즐겼었는데 방역수칙을 지키느라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은 고이 접어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파크투어는 여행이 정상화된 이후 인형과 같은 장소를 여행하는 고객에게 5%의 할인 혜택을 준다고 하니, 내 새끼가 돌아다닌 유명 관광지들을 찾아 같은 포토스팟에서 함께 또 사진을 찍는다면 더 새롭고 행복한 기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