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운영체제는 크게 봤을 때 두 가지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적용되는 iOS와, 아이맥과 맥북 등에 적용되는 macOS가 그것이다. (WatchOS는 앞의 두 운영체제만큼 소비자에게 가깝지는 않은 듯하다.) 같은 회사의 제품이고 애플의 제품들은 특히나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운영체제별로 사용자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딴판이다.
iOS 사용자들은 iOS 하면 추상적인 무늬나 바다 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기본 월페이퍼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맥이나 맥북의 사용자들은 macOS 하면 웅장한 자연경관을 떠올리곤 한다. 게다가 macOS는 버전별로 이름까지 있다.
애플은 전통적으로 버전마다 월페이퍼를 바꾸어가며 해당 월페이퍼를 macOS의 얼굴로 사용해왔다. 아이콘에 월페이퍼를 사용하는 독특한 브랜딩에서 그 흔적을 간단히 엿볼 수 있다. 알파벳 X의 틈새로 살짝 월페이퍼를 보여줬던 10.9 매버릭스와 10.10 요세미티, 그라디언트 디자인으로 약간의 정체성 방황을 겪은 10.11 엘캐피탠을 지나, 시에라부터 현재의 빅서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인 '월페이퍼 브랜딩'을 해왔다.
이 글에서는 애플이 macOS의 브랜딩을 어떻게 해왔는지에 대해 버전별 월페이퍼를 중심으로 적어보려 한다. 월페이퍼 브랜딩을 간단히 들여다보고, 그 뒷이야기를 통해 애플의 똑똑함을 감상해보자.
애플, 캘리포니아, 그리고 월페이퍼
macOS의 역대 운영체제 버전들에는 각각 이름이 있다. 정확히는 Mac OS 9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후 macOS X로 개편하면서 'macOS X 10.0 치타'부터 퓨마와 재규어 등을 거쳐 10.8 마운틴 라이언까지는 고양이과 동물들의 이름을 붙였다. 정말 브랜딩에 '진심'인 기업이 아닐 수 없다.
애플은 OS X 10.9 매버릭스부터는 캘리포니아주의 지명을 사용하며 브랜딩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애플 브랜딩에서 캘리포니아주라는 정체성
애플 역사의 정수가 담겨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창립자 스티브 잡스의 고향이자 사망지이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는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났고, 재학하다 중퇴한 리드 칼리지에서의 생활을 제외하고는 일생을 내내 캘리포니아에서 보냈다. 잡스는 캘리포니아주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고 애플의 브랜딩에도 캘리포니아를 녹여내려 했다.
애플의 디자인 역사를 되짚어보는 공식 디자인북인 <디자인 바이 애플 인 캘리포니아(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의 제목에서도 애플 브랜딩에서 캘리포니아가 갖는 의미가 드러난다. 애플의 본사 역시도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하고 있고 스티브 잡스는 본사 건물을 짓는 데도 엄청난 공을 들였다. 위의 사진이 애플의 신사옥인 애플 파크인데, 스티브 잡스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2015년도부터 사용된 애플 공식 폰트 이름은 San Francisco다. *미국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샌프란시스코는 캘리포니아주 북부에 위치한 대도시다.
캘리포니아를 어떻게 브랜딩에 사용할 수 있었을까
캘리포니아는 미국 본토의 최서단에 위치하여 서부를 상징하는 주로서, 자유롭고 유쾌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기후도 온난해서 도로에 야자수가 자란다. 아래는 현재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인 언니와의 카카오톡 내용이다.
농땡이도 잘 치고, 인생 걱정도 없고, 내일 일은 신경도 안 쓰는 캘리포니아의 이미지는 애플의 프리미엄 이미지와는 잘 결이 맞지 않는다. 언니는 '애플의 이미지는 캘리포니아보다는 오히려 뉴욕에 가깝다'라고도 말했다. 자신의 고향인 캘리포니아를 강조하고 싶었을 스티브 잡스에게는 좀 곤란한 지점이었지 싶다.
스티브 잡스에게 행운이었던 건, 캘리포니아에는 웅장한 자연경관이 다수 있다는 것이었다.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하는 구역이라 거대 산맥이 많은데, 주의 중앙에는 캘리포니아 센트럴 밸리가 있으며, 동서남북으로도 거대 산맥들이 위치한다. 동쪽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 북쪽은 캐스케이드 산맥, 남쪽은 테하차피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에는 해안 산맥이 있다. 캘리포니아의 산맥은 산지가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나무 가득한 푸른 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굉장한 규모여서 암벽 등반가들에게도 인기다.
애플은 이러한 장엄한 자연경관들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애플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살리면서도 캘리포니아적 정체성을 가져갈 수 있었다.
OS X
캘리포니아의 지명을 사용하는, 마운틴 라이언 이후의 OS X 브랜딩은 매버릭스를 필두로 시작됐다. 다만 본격적인 브랜딩은 매버릭스 다음에 나온 버전인 요세미티에서부터 드러난다. 월페이퍼들을 차근차근 보면서, 애플이 이미지를 고를 때 어떤 기준을 사용하는 것 같은지 추측해보는 것도 좋겠다.
OS X 10.9 매버릭스
매버릭스(Mavericks)는 캘리포니아 북부에 위치한 서핑 명소의 이름이다. 매버릭스를 사용했던 유저라면 푸른 서핑 파도를 포착한 월페이퍼를 기억할 것이다. 아이콘은 10을 의미하는 로마자 X 모양의 틈새로 시원한 매버릭스가 보이는 원형 이미지다. 다만 이때는 캘리포니아 지명을 사용한 첫 번째 버전이었기 때문에 디자인으로는 마땅히 일관적인 정체성이 없었다.
다음 버전인 요세미티부터는 산맥이나 암벽, 고원, 사구(砂丘) 등과 같이 땅-하늘 구도의 월페이퍼를 제작할 수 있는 지명들을 따오게 된다.
OS X 10.10 요세미티
요세미티(Yosemiti)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끼고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따온 것으로, 깎아지른 듯한 요세미티 계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때부터 웅장한 느낌의 '땅-하늘' 브랜딩이 시작된 셈. 스티브 잡스는 요세미티에서 로렌 파웰과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요세미티 계곡은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서 자연경관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요세미티의 월페이퍼들은 공통적으로 요세미티 계곡의 간판 격 암벽인 거대 화강암 '하프돔'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프돔(Half Dome)은 반으로 잘린 돔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산봉우리로, 스티브 잡스가 결혼식을 올렸다는 마제스틱 요세미티 호텔에서도 잘 보이는 자연경관이다.
애플이 직접 지어 놓은 월페이퍼 이름이 재미있는데, 가장 하프돔 같지 않은 사진에만 굳이 '요세미티 하프돔'이라고 해놨다. 사진상으로는 하프돔보다 오히려 테네야 캐니언이 더 잘 보인다. 보정 때문인지 하프돔 느낌이 안 나는 사진이라 하프돔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래는 요세미티 OS의 기본 월페이퍼인 '요세미티'다. 하프돔의 북서면(Regular Northwest Face of Half Dome)을 촬영했다.
하프돔 하면 떠오르는 북면을 촬영할 경우 하프돔의 뒷배경까지 함께 촬영해야 종횡비가 맞춰지므로 하프돔에만 집중하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북서면 촬영본을 채택한 듯하다. 주변 산 위에서 찍거나 헬기에서 찍지 않고 아래에서 찍어 웅장한 느낌이 살아난다. 보정도 겁나 빡세게 들어갔다. 애플 특유의 보정에 관해서는 맨 아래에서 글을 갈무리하면서 자세히 언급할 예정이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 글에서 다루려 한다.
덧붙이자면 하프돔은 미국의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인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의 로고이기도 하다. 노스페이스는 말 그대로 하프돔의 북면을 뜻한다. 요세미티의 전망대 워시번 포인트(Washburn Point)에서 본 하프 돔은 여기, 요세미티의 또다른 암벽인 노스 돔에서 바라본 하프 돔은 여기(구글 지도 스트리트 뷰)에서 볼 수 있다.
참고로 요세미티는 현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언어로 회색곰을 뜻하는 'uzumate'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OS X 10.11 엘캐피탠
그 다음 버전인 엘캐피탠(El Capitan)은 요세미티의 일부 수정판이라는 의미로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의 거대한 바위인 엘캐피탠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요세미티 계곡이 엘 캐피탠과 하프돔 사이로 울창한 소나무 숲을 품고 있는 13킬로미터 길이의 계곡을 가리키는 말이니, 하프돔을 간판으로 내세운 OS X 요세미티의 수정판 이름으로서 손색이 없다.
엘캐피탠은 1851년, 스페인의 마리포사 대대가 요세미티 계곡에 있는 원주민을 몰아내면서 붙인 스페인어 이름 엘 카피탄(El Capitán)의 미국식 지명이다. 본래 아메리카 원주민이 부르던 "토토콘오라"(To-to-kon oo-lah) 또는 "토톡아누라"(To-tock-ah-noo-lah)라는 이름의 뜻을 그대로 옮겼다고 한다. 단어 생김새를 보면 감이 오겠지만 영어의 '캡틴(captain)'과 뜻이 같다.
엘캐피탠의 기본 월페이퍼로는 두 가지의 사진이 내장되어 있는데, 의외로 그 중 하나는 하프돔을 찍은 사진이다. 요세미티의 후속판 버전이다 보니 요세미티의 상징물이었던 하프돔을 넣은 것으로 보인다.
엘캐피탠과 하프돔은 서로 약 7km 정도 떨어져 있는 듯하다. 서로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 있는 암벽이다. 낭만적이게도 엘캐피탄 정상에서 하프돔이 잘 보인다.
엘캐피탠의 '엘 캐피탠' 월페이퍼는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해가 살짝 비치는 사진으로, 전체적으로는 푸른 계열을 유지하면서 주황색의 포인트를 줬다. 녹지 않은 눈도 보인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 놀라울 따름. 포토그래퍼들이 애플의 월페이퍼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돌아다닌 프로젝트도 있었는데, 이들의 작품을 보면 구도는 어떻게 잘 잡아도 애플 월페이퍼처럼 시간과 날씨와 계절의 삼박자가 전부 맞는 사진은 정말 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애플은 요세미티와 앨캐피탠을 시작으로, 매버릭스와는 달리 땅과 하늘의 조합으로 장엄한 느낌을 살린 이미지로 macOS 브랜드를 굳혀나가게 된다. 시에라와 하이 시에라를 보자.
macOS 시에라, macOS 하이 시에라
시에라(Sierra)는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가리킨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지나는 그 시에라 산맥이다.
그 후속 버전인 하이 시에라(High Sierra)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최정상에 펼쳐진 시에라 고원 지역을 뜻한다. 하이 시에라는 시에라의 기능을 보강하는 버전의 운영체제여서 시에라 산맥에 속한 하이 시에라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요세미티-엘캐피탄에서 했던 네이밍과 비슷한 맥락이다.
시에라는 스페인어로 산맥을 뜻한다. 서아프리카의 국가인 시에라리온(Sierra Leone)의 시에라와 같다. 참고로 시에라리온은 포르투갈의 탐험가에 의해 '사자 산'이라는 의미로 이름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시에라의 간판 월페이퍼 '시에라'는 시에라 산맥의 앨러배마 힐스를 촬영한 사진이다. 엘 캐피탄과 비슷하게, 여명으로 빛나는 주황색과 그림자 진 푸른색이 적절히 섞인 뛰어난 사진을 사용했다. 이러한 여명은 한 시간도 안 돼서 사라지기 때문에 촬영하기 상당히 어려운 시간대다.
시에라 고원을 촬영한 하이 시에라 월페이퍼는 보다 다채로운 색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로 방향으로 갈라진 땅-하늘 구도와, 난색과 한색이 적절히 배합된 컬러 팔레트는 유지했다. 아직도 저게 합성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되는 게, 위쪽과 뒤쪽은 완전히 겨울인데 아래쪽은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시간을 초월한 느낌까지 준다.
macOS 모하비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은 맥OS 시리즈 중에서는 그래도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지명이다. 모하비 사막은 캘리포니아주 남동부를 중심으로 네바다주, 유타주, 애리조나주에 걸쳐 있는 고지대 사막이다. 애플은 이때부터 시간대에 따라 변하는 다이내믹 월페이퍼를 선보였다.
이전까지는 요세미티 근처의 산맥 지형들을 월페이퍼로 사용했다면, 모하비의 기본 월페이퍼는 모래언덕, 즉 사구가 메인이다.
소재는 다르지만 역시 가로로 탁 트인 느낌의 구도다. 이쯤 되니 맥OS 월페이퍼의 정체성이 읽히기 시작한다. 모하비 때에는 월페이퍼에 상당히 공을 들였는지 '사막 OOO' 시리즈로 몇 장의 월페이퍼들을 더 제공했다.
메인 월페이퍼보다는 컬러 팔레트가 훨씬 더 자유롭긴 한데, 아무리 위로 솟은 오브제가 등장한다 할지라도 어떻게든 수평적인 느낌을 살렸다. 또, 빛-어둠, 위-아래, 난색-한색 등의 대비 요소가 하나씩은 꼭 들어가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기하학적 패턴이 들어간 월페이퍼들도 선보였지만 유독 모하비 당시에 월페이퍼가 많았었기에 생략한다.
모하비 사막의 모하비의 어원은 아메리카 원주민인 모하비 족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Mohave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스페인어식 표기법을 따라 Mojave(모하베)로 적고 있다.
macOS 카탈리나
카탈리나는 산타 카탈리나 섬의 이름을 따와서 지어졌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해안에 위치한 산타 카탈리나 섬은 현재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는 섬이다.
이 섬을 최초로 방문한 유럽인은 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리요라는 탐험가로, 자신이 타고 간 선박의 이름을 따서 이 섬을 산살바도르라고 이름지었다. 카탈리나라는 이름은 카브리요가 섬을 방문한 지 반세기가 지난 17세기, 스페인의 탐험가인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가 성 캐서린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비스카이노가 섬에 도착한 날이 성 캐서린의 날 전날이었기 때문이다. 성 캐서린(Saint Catherine)을 스페인어로 읽으면 산타 카탈리나(Santa Catalina)다.
카탈리나 역시 다이내믹 월페이퍼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밤으로 변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카탈리나의 월페이퍼는 정방형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에서는 위아래가 잘렸지만 실제로는 정방형이다.
애플은 macOS 카탈리나에서 산타 카탈리나의 아름다운 경관을 촬영한 다른 월페이퍼들도 선보였다. 산타 카탈리나 자체가 바다로 둘러싸인 섬인 데다 섬의 생태도 푸르른 풀들이 자라기 때문에 월페이퍼의 색감은 이전 버전 OS의 월페이퍼들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편이다. 보정도 강하게 주지 않았다. 섬이라 수평선이 꼭 등장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macOS 빅서
빅서(Big Sur)는 미국 본토에서 가장 긴 미개발 해안선이다.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여, 미국 서부로 휴양 여행을 계획해본 사람이라면 여행지 목록에서 반드시 봤을 법한 명소다.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소수의 원주민들만이 거주하던 곳이었으며, 해식애와 푸른 바다가 이루는 절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빅서라는 이름 역시 스페인어에서 왔는데, '큰 남쪽'을 뜻하는 '엘 수르 그란데(El Sur Grande)'를 미국식으로 옮긴 것이다. sur는 스페인어로 남쪽(south)를 뜻하고, el은 관사다. 그란데는 커피의 민족 한국인이 잘 알고 있듯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삼성전자의 AI 비서 빅스비(Bixby)도 빅서와 인연이 있다. 빅서의 시작 지점에 있는 다리가 바로 빅스비다. 삼성전자의 담당자는 빅스비의 이름에 대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예쁜 다리 이름과 같아 친숙한 이름"이라고 말한 바 있다.
빅서의 월페이퍼에도 빅스비 다리가 등장한다. 다이내믹 월페이퍼의 촬영지가 바로 빅스비 다리가 위치한 빅서의 시작 지점이다. 잘 들여다 보면 빅스비 다리가 보인다.
빅서의 대표 다이내믹 월페이퍼는 이전보다 더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구름도 많이 지나가고, 빛의 변화도 보다 크다. 아래는 빅서 OS의 대표 월페이퍼 네 장을 모아놓은 것이다.
특이하게도 빅서는 이전 버전의 월페이퍼들과는 달리 그래픽 월페이퍼 역시 강조하며 더블 타이틀로 삼았는데, 이 그래픽 이미지는 빅서 지역의 능선을 표현한 그래픽 아트로 보인다. 현대적인 디자인을 따르면서도 캘리포니아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인 것 같다. 또한 빅서에서는 디자인 면에서나 기능 면에서나 대대적인 업데이트가 이뤄졌기 때문에 브랜딩도 큰 변주를 주어야 했을 것이다. 빅서를 그린 일러스트 월페이퍼도 추가되었는데, 이들 역시 낮과 밤을 표현하는 다이내믹 월페이퍼들이어서 브랜딩에 굉장히 신경을 쓴 티가 난다.
최근 네이버 카페나 페이스북 등 우리가 접하는 많은 프로덕트들이 변화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UI는 2020년 이후로 큰 트렌드 전환이 있었다. 우선 버튼들의 크기가 커졌고, 보더 래디어스(border radius) 값도 커졌으며, 메뉴바나 내비게이션 등의 UI요소에 디테일이 빠져 단색으로 굉장히 단순해졌다. 글자도 굵은 글자를 자주 사용하는 추세다. 아니면 아예 얇든지.
빅서의 UI도 이 트렌드에 발맞추어 업데이트를 단행했다. 독바의 아이콘들이 보다 동글동글해졌고, 윈도우 메뉴바에서 회색을 빼고 그라디언트도 제거했다. 빅서가 이전 버전들과는 달리 상당히 단순한 그래픽 아트 월페이퍼를 내세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해당 그래픽 월페이퍼에 빅서를 실행한 모습을 보면 굉장히 심미적이어서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느낌까지 풍긴다.
하지만 이러한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빅서에서도 macOS다운 정체성을 유지했다. 수평 방향으로 안정적인 구도, 적어도 하나 이상의 대비 요소, 자연경관의 지형지물임을 나타내는 심미적인 곡선 등이 그것이다. 바로 다음 파트에서 이 정체성을 가지고 애플의 macOS 브랜딩을 갈무리할 것이다.
갈무리
macOS 월페이퍼의 톤앤매너
지금까지 OS X 10.9부터의 역대 월페이퍼들을 살펴봤다. 까먹기 전에 전체적으로 한번 더 보고 가자.
공통점을 살펴보면 아래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 캘리포니아의 자연경관이다. 이 자연경관들은 고저가 있고 장엄한 규모의 자연경관들이어서 심심하지 않고 다채로운 느낌을 준다.
- 수평적 이미지를 사용한다. 가로로 넓지 않은 자연경관이라면 촬영 구도를 바꾸어 넓고 장엄하게 연출한다. (ex. 하프돔)
- 사람이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 인공물의 등장 역시 제한적이며, 등장한다 할지라도 사진에서 굉장히 작은 비중을 차지한다. (ex. 빅스비 다리)
- 물-하늘, 땅-하늘, 빛-어둠, 난색-한색 등, 대비 요소를 반드시 하나 이상 활용한다.
간판 월페이퍼들의 공통점
간판 월페이퍼들을 모아보면 그 유사성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단 색채의 느낌부터 비슷하다. 하이 시에라가 여러모로 조금 이단아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 하이 시에라를 제외하면 하늘에 구름이 있어 역동적인 인상을 준다.
- 난색과 한색을 반드시 함께 사용해 쫀득하게 보정한다.
- 주로 여명기에 촬영하여 그림자는 한색으로, 태양빛을 받는 부분은 난색으로 표현되기 쉽게 했다.
- 하이 시에라의 경우 눈이 쌓인 구역과 하늘은 한색이고 단풍이 든 구역은 난색이어서 여명기의 조명이 굳이 필요 없었다.
- 전체적으로 푸른 빛을 띠는 빅서의 경우에도 산맥의 뒤쪽은 갈색, 앞쪽은 노란색이어서 풍부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
- 울퉁불퉁한 암벽, 산맥이나 사구의 능선 등, 그림자가 예쁘게 지는 구역을 촬영했다. 특히 모하비 이후의 월페이퍼들은 다이내믹 월페이퍼이기 때문에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의 위치나 모양이 바뀌므로 이러한 위치 선정은 필수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 완벽한 가로방향 직선보다는 곡선으로 뻗은 가로선을 채택했다.
- 카탈리나에서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능선이 최대한 수평선을 가리게 했다.
- 빅서에서는 아예 바다를 수평선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하늘과 바다 사이에 땅을 위치시켰다.
macOS는 왜 이런 브랜딩을 선택했을까?
Windows나 리눅스 등 여느 범용 운영체제들은 월페이퍼의 색감을 신경 써 봤자 사용자 모니터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macOS만큼의 브랜딩 측면의 이득이 없다. 윈도10의 기본 월페이퍼들을 보면 인공물이나 사람도 자주 등장하고, 컬러 팔레트는 난색보다는 한색에 치우친 느낌이다. 화면보호기에서 아주 다양한 자연경관 월페이퍼를 제공하지만 사용자가 지정하지 않은 랜덤한 월페이퍼를 보여주고 일관성이랄 게 딱히 없다.
하지만 macOS는 범용 운영체제들과는 달리 애플 제품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되는 운영체제다. 애플의 정체성을 표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은 셈이다. 또한 애플의 (주력) 컴퓨터들은 모니터와 본체가 일체형이다. 그런고로 macOS는 애플의 뛰어난 디스플레이까지 뽐낼 수 있어야 했다. 컬러 팔레트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이유다.
아이맥과 맥북은 고가의 가전제품이다. 보급형 선택지가 존재하는 아이패드나 아이폰과는 브랜딩의 결이 다르다. 따라서 애플은 필연적으로 macOS를 브랜딩하면서 애플다운 프리미엄 이미지를 이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애플의 심지인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애플과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니 브랜딩이 아주 중요했다. 이 선택의 기로에서 캘리포니아의 장엄한 자연경관을 끌고 온 것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다. 거기다 다채로우면서도 일관적인 톤앤매너까지 챙겼으니, 가히 브랜딩의 끝판왕이라 하겠다.
애플의 비윤리적인 이면이나 각국 소비자법의 허점(loophole)을 피해가는 꼼수는 별로 유쾌한 모습은 아니지만, 애플의 브랜딩만큼은 정말 본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자기 회사의 특성과 브랜딩의 궁극적인 목표를 제대로 파악하고 진행하는 브랜딩이 대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가에 대해 논하려면 애플이 절대 빠질 수 없다. 큰 변화를 맞은 빅서 다음으로 나올 macOS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