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한 마케팅의 비밀!
2021년 11월, 러쉬는 공식 홈페이지에 ‘러쉬 공식 성명문: 러쉬 소셜 미디어(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왓츠앱, 스냅챗) 중단 선언[🔗]’이라는 성명문을 업로드했습니다. 전문은 아래 접은 글을 펼쳐 보세요.
러쉬는 언제나 고객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러쉬 제품을 사랑하고 브랜드 철학을 지지하는 고객과 직접 관계를 맺고,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늘 러쉬의 목표였습니다.
초기 소셜 미디어는 고객과 친밀하고 돈독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진화는 사람들이 어떤 포스팅을 볼 수 있는지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됐고,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누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결정하는 수준까지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그들의 포스팅을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시키고 검색 엔진 최상위를 선점하려고 돈을 지불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소셜 미디어 기업들은 정치, 종교, 캠페인, 프로모션 등 다양한 활동을 위해 의도적으로 개인 정보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의 역기능인 디지털 폭력, 외모 지상주의, 불안과 우울 같은 정신 건강 문제 등이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러쉬는 소셜 미디어를 중단하기 위해서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고객과 소통 창구인 소셜 미디어를 당장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러쉬는 이제, 불편하지만 꼭 필요하다고 믿는 일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소셜 미디어 기업 내부 고발자들의 용감한 폭로는 러쉬의 결심은 더욱더 굳건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증거와 내용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조작이 가능한 알고리즘과 위험 요소가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과하는 느슨한 규제는 익히 알려진 소셜 미디어 폐해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세대인 젊은 층이 이러한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이버 괴롭힘, 가짜 뉴스, 극단주의, 고립공포감(FOMO, Fear Of Missing Out), 유령진동증후군(phantom vibration)*, 조작된 알고리즘까지 끝도 없이 많은 유해성 요소는 청소년들의 자살, 우울증과 불안을 증가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유령진동증후군(phantom vibration): 휴대전화 중독과 의존도가 심해지면서, 실제로는 전화나 문자가 오지 않았는데 휴대 전화벨 소리가 들리거나 진동을 느낀 것 같이 착각하는 현상
"저는 러쉬 제품 발명가(개발자)입니다. 사람들이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웰빙에 집중할 수 있는 배쓰 밤과 같은 제품을 만듭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는 이와 정반대의 목적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의도적인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이를 조작하여 소셜 미디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진정한 휴식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 잭 콘스탄틴(Jack Constantine, 제품 발명가, 글로벌 디지털 수장)
러쉬는 고객에게 으슥한 골목에서 만나자고 제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점차 ‘멀리해야 할 공간’으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상에서도 고객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변화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바라듯, 러쉬는 소셜 미디어 기업들이 건강한 대안과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규제할 국제 법규가 마련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적어도 디지털상에서 러쉬를 찾는 고객만큼은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강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따라서 러쉬는 2021년 11월 26일부터 페이스북(Facebook), 인스타그램(Instagram), 스냅챗(Snapchat), 왓츠앱(Whatsapp)과 틱톡(TikTok)에서 활동을 중단합니다. 적어도 이들이 사용자들에게 더욱 안전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 러쉬는 위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평생 해로운 원재료 없는 제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일부 소셜 미디어를 보세요. 우리 삶에 위험하다는 증거가 넘쳐납니다. 저는 고객이 위험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젠 그 위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마크 콘스탄틴(Mark Constantine, 러쉬 공동 창립자)
러쉬는 무조건적인 안티 소셜(anti-social)을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밝힙니다. 더욱 건강하고 윤리적인 소통 채널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오랜 세월 고객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 창구였던 전통적인 방식도 다시 시도하고 더욱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현재는 전 세계 유튜브(YouTube) 채널을 통해 계속해서 러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좋아요, 구독, 혹은 알람 설정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러쉬는 늘 그곳에 있을 테니, 필요할 때 언제든 찾아주세요!
러쉬코리아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대신, 홈페이지, 뉴스레터, 유튜브, 전국 러쉬 매장,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로 여러분 곁에서 함께할게요. 관련 문의는 홈페이지 고객센터 1:1 문의, 상담톡, 웹마스터 이메일(webmaster@lush.co.kr)로 연락주십시오.
요지는 이렇습니다. "작금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너무 위험하며 역기능이 많음에도 관계자들은 이를 개선하려 들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에 러쉬가 소통 창구로 이용해 왔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냅챗, 왓츠앱, 틱톡의 다섯 플랫폼이 사용자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이 플랫폼들을 사용하지 않겠다."
그러나 러쉬는 영리 기업입니다. 어떤 캠페인을 진행하더라도, 손해를 보는 선택을 할지언정 그 손해를 메우거나 심지어 능가하는 이득을 취하고자 하죠. (사실 영리기업이 아닌 자선단체라도 마찬가지겠지만요.) 그런 점에서 이번 러쉬의 성명서가 어떤 마케팅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 왜 ‘힙’한지 따져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힙포인트는 이겁니다.
마치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감한 선택으로 고객생애가치(CLV)를 획기적으로 높인다!
‘소셜 미디어 보이콧’으로서의 캠페인적 의미,
브랜드철학에 공감하는 고객을 정확히 겨냥하다
러쉬는 이번 성명문에서 소셜 미디어 서비스들이 ‘사용자에게 더욱 안전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 플랫폼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적었습니다. 마치 보이콧 같지요.
러쉬는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브랜드철학을 지닌 브랜드입니다. 이런 브랜드철학에 공감하는 고객들이라면 소셜 미디어의 장점뿐만아니라 위험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이런 ‘보이콧’으로서의 성명문은 기존 고객들에게 매우 효과적일 겁니다.
성명서와 보이콧의 강렬함을 중화하는
고객에게 편지를 쓴 듯한 솔직한 문투
"다른 곳에서 만나요." 러쉬가 공지와 함께 업로드한 이미지에 적힌 문장입니다.
사실, 러쉬가 성명서에서 원하는 바와 달리 러쉬의 고객들 역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러쉬 고객의 주 연령대가 낮기도 하고, 윤리에 관심이 많은 고객이라면 소셜 네트워킹을 활발하게 전개하기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러쉬 고객들의 소셜 미디어 이용률이 다른 브랜드보다 더 높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러쉬는 마치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과 같은 친근하고 솔직한 문투를 채택했습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 찾아 달라고 당부하기도 합니다. 또한 고객에게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기를 권하거나 ‘안티 소셜’을 주장하기보다 먼저 주요 마케팅 창구를 포기하겠다고 밝혔죠. 자칫 공격적으로 읽힐 수도 있는 성명서의 강렬함을 효과적으로 중화한 겁니다.
러쉬는 무조건적인 안티 소셜(anti-social)을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밝힙니다. 더욱 건강하고 윤리적인 소통 채널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오랜 세월 고객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 창구였던 전통적인 방식도 다시 시도하고 더욱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현재는 전 세계 유튜브(YouTube) 채널을 통해 계속해서 러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좋아요, 구독, 혹은 알람 설정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러쉬는 늘 그곳에 있을 테니, 필요할 때 언제든 찾아주세요!
러쉬코리아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대신, 홈페이지, 뉴스레터, 유튜브, 전국 러쉬 매장,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로 여러분 곁에서 함께할게요.
덧붙이자면 러쉬는 과거에 '그린워싱’ 논란에 휩싸인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러쉬를 구해준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 소통이었죠. 비건을 지향하는 러쉬는 동물의 골분으로 정제한 설탕을 원재료로 사용했다가 이를 뒤늦게 발견하고 전량 리콜하며 사과문을 업로드한 적이 있고, 수년간 사용하던 동물복지 계란의 농장을 방문해 닭 사육 현장을 점검하고 결국 전 제품에서 계란을 빼는 결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객과의 소통과 변화하는 모습 역시 브랜드 정체성인 것이죠.
필수로 여겨지는 소셜 미디어 마케팅,
과감하게 포기해 브랜드철학을 강조하다
대형 코스메틱 브랜드는 소셜 미디어 마케팅을 포기하기 어렵습니다. 할인 프로모션은 물론이고 신상품도 보여주어야 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시각적 요소를 활용하고 홍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캠페인을 마케팅 수단으로 자주 활용해왔던 러쉬에게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포기는 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소셜 미디어 마케팅을 포기함으로써, 러쉬가 ‘진정으로 브랜드철학을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반전)
러쉬는 많은 것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반전이 있어요. 러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저는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러쉬는 오프라인 마케팅에 원래부터 큰 힘을 주고 있었다.
저는 강남역의 긴 대로변 양쪽을 ‘러쉬 향이 나는 거리’와 ‘러쉬 향이 나지 않는 거리’로 구분합니다. 러쉬는 거리에서 강렬한 향을 내뿜어 고객을 유혹합니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코를 강타하는 특유의 냄새로 ‘러세권’에 진입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죠.
어디 그뿐일까요. 러쉬는 ‘밖은 추우니 어서 들어와서 몸을 덥혀요(warm up: 웜업하자는 의미도 있으니 중의적이죠 ㅎㅎ)’라는 사랑스러운 문구를 붙여 놓기도 합니다. 강남 러쉬는 코로나가 심해졌을 때 '들어와서 손을 씻고 가세요’라는 문구를 붙여 놓기도 했었어요.
러쉬의 마케팅 전략은 이렇게 유혹한 고객을 반갑게 맞아주는 현장 직원들의 ‘영업’으로 후각, 시각, 촉각을 자극하며 제품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러쉬에 입장한 고객들은 자신을 졸졸졸 따라와 이것저것 묻는 직원과 대화를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면대 앞에 앉아 직원의 따스하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손등을 황제처럼 보살핌(?)받게 되죠. 그 정성에 미안함을 느껴서라도, 매장을 나오기 전에 자그마한 배쓰밤이나 마스크팩 한 개라도 챙기게 됩니다. 러쉬의 영업은 이렇게 이뤄집니다.
MBTI에 한 번이라도 진심이었던 사람들은 러쉬 직원들이 전부 ENFP라는 농담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만큼 러쉬의 직원 교육은 철저하고, 치밀합니다. 원래부터 오프라인 마케팅에 크게 기대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러쉬의 고객들은 충성도가 높다.
게다가 한 번 ‘러쉬스러움’에 반한 고객들은 러쉬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데다, 브랜드철학에 공감하여 더욱 충성고객이 되기도 합니다.고객들의 바이럴 마케팅도 대단해서, 러쉬의 인기 제품들은 주로 입소문으로 추천되고 있고요.
러쉬는 많은 것을 잃지 않았다.
따라서 소셜 미디어 마케팅을 중단해도 러쉬의 마케팅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것을 포기한 듯해 보이고, 많은 브랜드에서는 선택할 수 없는 방식이지만, 실제로는 큰 손해가 아닌 것이죠!
게다가 매달 20억 명 이상의 사용자가 로그인하는 데다, ‘커뮤니티 기능’으로 인스타그램처럼 사용도 가능한 유튜브에 개설된 채널은 유지된다고 합니다.
어쩌면, 가장 가성비 좋은 선택일지도?
앞으로 들어갈 소셜 미디어 플랫폼 관리 비용을 아끼고, 홈페이지 성명서를 하나 업로드해 고객들의 바이럴 마케팅까지 유도하다니.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말 똑똑한 것 같습니다. 어떤 기업들은 예산이 부족해서 소셜 미디어 플랫폼 관리를 포기하기도 하는 걸요.
이 성명문으로 기존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였고 러쉬의 잠재고객에게 어필했다면, CLV의 획기적인 상승을 기대해볼 만합니다. 그러잖아도 트위터에서 이 성명문을 알리는 트윗이 심심찮게 리트윗되는 것을 보기도 했고요.
흔히들 CLV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신규 고객 유치와 기존 고객의 리텐션을 높이는 것을 비교하곤 합니다. 둘 다 필요한 일이지만, 보통의 경우 가성비가 좋은 것은 후자예요. 업종마다 다르긴 해도 고객들은 기존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쭉 이용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죠. 이 말은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을 빼오는 것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고객이 마음을 우리에게 돌리도록 하려면, 고객이 우선 우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한 번이라도 접하게 해야 하고, 더 나아가 우리로 ‘갈아탈’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마케팅 비용과 프로모션 집행비용이 많이 들어가죠.
그런 점에서 러쉬의 가치 마케팅은 충실하고, 창의적이며, 배짱이 두둑합니다. 기업이 고객을 믿고 고객이 기업을 믿는다면 이보다 더한 고CLV 전략이 있을까 싶네요.